신앙도서 독서모임
저 자: 레프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수록. 레스코프 원작, 톨스토이가 다시 씀
옮긴이: 채수동 · 고산
출판사: 동서문화사
출판일: 2004. 03. 01.
어느 고을에서 배심재판이 열렸다. 배심원은 농부와 귀족, 상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배심장은 명망이 높은 상인 이반 아키모비치 벨로프였다. 일흔 살에 가까운 노인인 그는 정직하고 계산이 정확하여 누구를 속이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기에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배심장이었다.
배심원들이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자, 어느 농부의 말을 한 마리 훔친 죄로 기소된 남자가 끌려 나왔다. 막 재판이 시작되려는 순간, 이반 아키모비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저는 평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재판장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무튼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저를 배심원에서 제외시켜 주십시오.”
이반 아키모비치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울음이 터져 나오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재판장은 이반 아키모비치를 돌려보낸 다음, 저녁에 자기 집에 불러 물었다.
“어째서 재판을 거부하셨습니까?”
“재판장님, 저나 제 아비가 어쩌면 그 도둑보다 더 나쁜 사람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반 아키모비치는 재판장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가 상인의 아들이고 그 고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비는 농부였지만 그 일대에서는 소문난 도둑으로 결국 감옥에서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으나 술만 취하면 이반 아키모비치의 어머니를 때리고 온갖 난폭한 짓을 다했다. 그러다가 술이 깨면 후회하곤 했다.
한번은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도둑질을 하러 갔다. 그런데 그 한번이 이반 아키모비치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다른 도둑들과 주막에서 만나 어디 털만한 곳이 없는지 서로 의논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제안했다. “여보게들, 왜 큰 길가에 벨로프네 가게 창고 알지? 그 창고 안에 어마어마한 재물이 잔뜩 들어 있는데,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야.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내 아들을 들여보내면 될 것 같네”
그 창고는 높은 곳에 조그만 들창이 하나 있어 어른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가는 삼노끈을 묶어 창문까지 당겨 올린 후에 아들이 창고에 들어가 안에서 물건을 끈에 묶어 매달아 올리면 다시 그것을 끌어 올리는 묘책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들을 끌어내면 그만이었다. 도둑들은 크게 환영하며 당장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행방을 묻자 뭔가 의심스러웠던 그의 어머니가 남편을 말렸지만 술에 취해 손이 올라오는 것을 알고 하는 수 없이 아들을 찾아왔고 아버지와 아들은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진 저녁에 도둑 세 명과 이반 아키모비치는 벨로프라는 상인의 집에 도착했다. 거기서 도둑들은 그를 가는 삼노끈에 묶고 또 한 가닥의 끈을 손에 쥐어주며 그를 달아 올렸다. “얘야, 창문으로 들어가면 잘 살펴보고 가능하면 비싼 물건, 이를테면 모피 같은 것 말이다. 그걸 끈 중간에 묶도록 해라”
창고에 들어간 이반 아키모비치는 너무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모피 같은 것이 손에 걸리면 그것을 끈으로 묶고 내 보내면 밖에서 그것을 잡아 당겼다. 그렇게 세 번을 하고 나서 충분했던지 끈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아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절반쯤 올라갔을 때 툭하고 줄이 끊어지고 아들은 다행히 커다란 베개 위에 떨어져 다치지는 않았지만 너무 무서운 나머지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야경꾼들이 도둑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놀라 그들은 아들을 끌어 올리던 줄을 놓아버리고 물건만 걸머지고 냅다 도망쳐 버린 것이었다.
얼마 뒤 눈을 뜨자 등불을 든 상인 벨로프와 순경이 서 있었다. 순경이 이반 아키모비치에게 누가 너를 데리고 왔느냐고 묻자 아버지와 왔다고 말했고 순경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무서워진 그는 울기 시작했다. 그때 벨로프 영감이 순경에게 “이제 그만하시오. 어린아이는 천사입니다. 저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대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이미 잃어버린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라며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벨로프 영감은 천국으로 갔지만 그는 정말 어진 사람이었다. 게다가 노부인은 더 자비로운 분이었는데 이반 아키모비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과자를 주었다. 그는 울음을 그치고 안심했다.
다음날 아침에 부인은 이반 아키모비치에게 “아가, 집에 돌아가고 싶니?”라고 물었고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그저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인이 “이 집에 있고 싶니?”하고 물어서 그는 또 “예”하고 대답했다. “그럼, 여기 있으렴”
그렇게해서 이반 아키모비치는 그 집에 있게 되었고 그 집 사람들은 버려진 아이를 주웠다고 관청에 신고하고 그를 수양아들로 삼았다. 처음에는 잔심부름을 했지만 적당한 나이가 되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가게에서 장사를 맡게 되었고 성실하게 일하는 그를 벨로프 부부는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 그리고 그의 딸과 결혼시켜 이반 아키모비치를 양자로 삼았다. 벨로프 영감이 죽고 나자 재산은 온통 이반 아키모비치의 차지가 되었다.
“저란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도둑이었고, 도둑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남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도둑질로 죄를 범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벌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판사는 이반 아키모비치의 말을 다 듣고 나자 그리스도교의 계명에 비추어, 누가 누구를 심판하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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