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서 독서모임
저자:조정민목사
저자는 MBC에서 25년간 언론인으로 재직하면서 기독교를 비판하였으나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만난 후 목사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베이직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이 책은 예수님의 첫 설교인 산상수훈을 정리한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기간 동안 나는 과연 그 말씀을 듣고 제대로 집을 지었나 자문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12 chapter로 되어 있다
1.새로운 복: 복이란 무엇인가?(마5:1-12)
2.소금과 빛: 흔적없이 사라지고 있는가?(마 5:13-20)
3.살인: 살인의 본질은 무엇인가?(마5:21-26)
4.간음:음란의 뿌리(마5:27-37)
5.정의:너희도 온전하라(마5:38-48)
6.위선:제발 티 내지 마라(마6:1-8,16-18)
7.기도: 바로 살게 하소서(마6:9-15)
8.재물: 왜 돈에 묶이는가?(마6:19-24)
9.염려: 날마다 걱정하는 이유(마6:25-34)
10.비판: 왜 남을 쉽게 비판하나?(마7:1-6)
11.좁은 길: 남을 먼저 대접하는 길(마7:7-14)
12.반석: 좋은 성품의 집(마7:15-29)
1. 새로운 복
복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첫 설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첫 설교의 서두는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팔복입니다. 팔복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복을 받을 수 있는 8가지 노하우가 아니라, 하늘의 복이 임하는 성품과 성격에 관한 말씀이고, 세상 방식의 삶이 아닌 하나님 방식의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소망이 끊어진 때 아무도 희망을 말하지 않을 때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행복과 웰빙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고, 이대로 계속 살아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주시려 오셨기에 복음입니다. 우리가 즉시 돌이켜야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가 바로 곁에 있다고 알려주셔서 복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조상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기에 끝없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의 부와 성공과 건강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준부터 바로잡기 위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3-6)
세상의 기준에는 맞지 않는 새로운 언약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 이런 성품을 지닌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위의 말씀같이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복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7-10)
예수님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오셨습니다.
저자가 시무하는 베이직교회가 시스템없이 가려는 목적이 위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시스템은 편하고 효율적이지만 우리의 가난한 마음과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앗아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효율성은 권력의 토대를 마련하고 시스템은 우리의 애통한 마음을 점점 앗아간다는 것입니다.
내 구역 식구가 아니면 상관하지 않고, 내 사역이 아니면 나 몰라라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손해보는 것이 복이 된다는 마태복음 5:11-12절 말씀은 동의와 이해가 잘 안되지만 그러나 한가지 보장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 때 큰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예배를 드리는 것도 말씀의 내용을 확인하고, 성령님께서 보증해 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 소금과 빛
흔적없이 사라지고 있는가?
소금은 녹아서 맛을 내는 존재입니다.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소금은 반드시 녹아야 합니다. 소금의 운명은 형태가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나"(마5: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처럼 변하라고 합니다.
소금의 존재 이유는 짠맛을 내는 것입니다.
크리스쳔이란 이런 존재입니다. 가만두면 부패하는 세상에서 오직 짠 맛을 내서 세상이 썩지 않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저자가 주례를 위해 전하는 말씀 가운데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자주 전한다고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세상의 문제는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야 비로소 어른아이들이 아이 티를 벗고 어른스러워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소금 이야기는 어른 되라는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크리스쳔이 왜 빛인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 왜 빛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두 종류의 성도를 소개합니다.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말하는 사람과 자기 밖에 계신 예수님을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드러나지만, 자기 밖에 있는 예수님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모든 행실, 좋은 행동, 성숙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빛을 통해 태양을 인식하게 되듯 하나님의 사람들의 착한 행동과 삶으로 인해서 세상이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살인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21)
빛으로 소금으로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려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십계명중에 나와 이웃의 관계를 규정하는 6-10계명중 첫 번째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5:22)
예수님께서 지금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마태복음 5:21절의 말씀의 원래 뜻은 "화내지 말라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는 더 깊은 뜻을 지닌 말씀이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살인은 분노에서 시작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형제에게 분노하고, 욕하고, 미워하고, 비판하는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즉 선을 행하지 않으면 분노를 이기지 못합니다. 진정한 선의 기준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닮아 가려는 것, 이것이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화가 날 때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1)죄는 짓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경멸하거나 욕하지 마십시오.
(2)그날로 해결하십시오. 분노의 시한은 그날입니다.
(3)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마귀는 온갖 보복과 복수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별의별 소리로 마음을 들쑤실 것입니다.
4. 간음
음란의 뿌리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예수님께서는 간음이란 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음욕이란 사랑이 결여된 충동적인 욕구를 말합니다.
살인이 내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솟아오르는 분노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간음은 성적 충동이 대상과 상관없이 일어날 때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음란은 곰팡이와 같아 내면을 부패하게 만들어 사람이 거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혼의 압도적인 이유는 바로 간음에 있습니다.
이 음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하나님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차오르는 것은 곧 사랑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차오르는 벅찬 감동을 경험해야 가짜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진짜 사랑을 죽도록 올린하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죽도록 사랑에 올인한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시고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이 내게 차오르면 비로소 음란에서 벗어납니다.
5. 정의
너희도 온전하라(마5:38-48)
율법은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38)
그 당시 동형보복법은 손해 본대로 배상하면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으니 형평이고 정의입니다. 그러나 이 법의 원래 목적은 악이 악순환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은혜로운 조치로, 하나님께서 인간관계를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하고자 주신 율법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마5:3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법의 출발점을 다시 알려 주시면서, 오히려 피해를 당했을지라도 그 피해를 회복할 권리를 내가 먼저 포기할 때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세상의 정의는 권리의 회복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의무 이행보다 권리 주장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렇듯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는 자기 권리가 100프로 보장 받는 것이지만, 사실은 내 뜻이 100프로 이뤄지는 것을 정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법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5:39)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미5:40)
"또 누구든지 너롤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5:41)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
하나님의 법은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첫출발이 기도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권리를 포기하고 세상을 섬길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내가 죽으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6. 위선(마6:1-8, 16-18)
신앙생활은 믿음의 걸음과 삶의 현실을 어떻게 하나로 연합 할 것인가? 라고 한다
이 일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믿음과 삶의 일치를 보여 주셨고 제자들도 그 일치를 따르도록 요구하십니다.
믿음과 현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위선이라고 합니다. 위선은 내 안과 밖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6:1)
신앙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의로움을 사람 앞에서 드러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약 사람으로부터 그 의로움의 상을 받았다면 하나님은 굳이 또다시 상을 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미 상을 받은 종교 행위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1)구제 어떻게 할 것인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
돕는다고 소문내지 말고 조심스럽게 비밀리에 도와야 하늘에서 통용될 수 있는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구제 행위 가운데 내 의가 섞여 있으면 돕고도 오해와 불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주문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는데 그 고백대로라면 내 것 가지고 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도운 것입니다. 그러니 구제를 위한 물질이 나를 거쳐 갔을 뿐 내가 내세울 것은 아닙니다.
(2)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음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골방같은 은밀한 곳에서 은밀하게 계신 아버지께 하는 것이고 그러면 은밀하게 들으시고 은밀하게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은밀입니다.신앙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다니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한마음을 가지고 찾는 자들에게 내 백성이라고 하셨고 전심과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에게 응답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6:7)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부모의 말을 들은 대로 따라 하는 갓난아기들의 옹알이처럼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아버지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내 생각을 쏟아놓은 것이나, 아니면 나 혼자 넋두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신앙의 태도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당시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자기의 신앙을 누군가에게 입증하는 보편적인 행위가 바로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었습니다. 이 행위를 할 때 티내지 말고 하라고 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겍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충격입니다.
7. 기도(마6:9-15)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므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정체성과 기도의 본질인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호칭한 후 첫 번째 기도가 뭡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친밀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 이자리에 임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전반부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기도에 이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후반부(마6:11-13)는 우리의 현실 문제에 아버지가 관여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날마다 죄 요서를 간구하는 이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릴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죄 용서를 날마다 간구하는 것은 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의 대부분은 죄에 무감각해진 때문입니다.
죄가 얼마나 나와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들 죄짓는데 어떠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매일 죄 용서를 간구하는 성도는 용서받은 죄인, 용서가 필요한 죄인, 날마다 죄를 자각하고 죄로부터 돌이켜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죄에 무감각한 죄인과 구별됩니다.
그는 용서 받은 것을 알기에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용서 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가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관계가 사람과 사람 간에 관계를 다음 단계로 이끌어 가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용서받고 용서함으로써 우리가 죄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다집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목적
왜 기도하라고 합니까?
바르게 살기 위해섭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유혹과 악을 못 이깁니다.
궁극적으로 바르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8. 재 물(마6:19-24)
우리의 신앙생활을 뒤틀리게 하는 대표적인 것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재물과 염려와 비판입니다.
먼저 재물에 관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에 돈을 쌓는 것이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명을 뚫고 도둑질하는니라"(마6:19)
돈을 쌓아두는 것은 돈을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돈을 쌓지 말라고 하신 이유 세가지는 첫째 돈이 도둑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돈을 어디에 쌓느냐에 따라 돈은 축복이 되기도 하고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내 재능과 내 시간도 재물일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나를 위해 이 땅에 쌓기 시작하면 나를 병들게 하고 언젠가 도적을 만나게 됩니다.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하늘에 쌓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로 환전하는 것입니다. 돈이 나를 해치기 전에 선한 관계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돈이 나를 소유하는 지경에 이르면 나는 이미 부패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사람은 돈에 묶인 나머지 자유를 빼앗깁니다.
재물은 내 마음을 빼앗아 가는데, 마음은 다름 아닌 생명입니다. 마음이 먼저 보고 눈이 그다음 봅니다.
마음이 욕심 때문에 어두워지면 눈도 점점 흐려집니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눈이 흐려진다는 것이고, 눈이 나빠지면 이해력도 떨어지고 분별력도 떨어진다는 것입니다(마6:22-23)
돈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돈은 결코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선택을 하건 돈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이니까? 물질로부터 풀여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물질을 섬기지 않게 되고 물질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크리스쳔은 호주머니에 돈이 있건 없건 변함없이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9.염 려
날마다 걱정하는 이유(마6:25-34)
염려하는 이유1:작은 믿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6:27)
부모가 염려한다고 아이들의 키가 자랄 수 있나요?클 때가 되어서 크고 멈출 때가 되어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겁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6:30)
예수님은 들풀도 벌거벗은 채 버려두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헐벗게 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걱정하는 이유는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염려하는 습관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염려는 눈 앞에 펼쳐질 지금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이 현실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입니다.
염려하는 이유2: 하나님의 부재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니라"(마6:31-32)
염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생활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합니다(빌4:6-7)
염려하는 이유 3: 나를 추구함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6:33-34)
내 나라, 내 뜻, 내 야망, 내 소유를 구하며 살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수고와 괴로움이 많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일은 네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 네 소관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10. 비 판
왜 남을 쉽게 비판하나?(마7:1-6)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이 왜 쑥쑥 자라지 못하고, 제자리를 걸거나 되돌이표가 되는지 알려 주십니다. 재물과 염려와 비판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이유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내가 왜 남을 비판합니까?
내가 얼마나 흠이 많은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를 성찰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언제나 내 잘못에 민감합니다. 내 실수와 허물은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실수와 허물은 덮어줍니다. 비판하는 사람의 특징은 반대이지요. 남의 허물은 작은 것까지도 들추어내고 내 잘못,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잘못은 아무리 커도 못 본 체합니다.
예수님은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위선자라고 부릅니다.
하나님만 판단할 수 있다.
사람들이 저 사람 겸손하다고 말해도 속지 마십시요. 사람들이 저 사람 교만하다고 말해도 속지 마십시요. 그 사람들 생각일 뿐이고 그 사람들 판단알 뿐입니다. 겸손한지 아닌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죄 중의 죄입니다.
저자는 남의 얘기를 잘 안하는 사람들은 안 보여서 얘기 안 하는게 아니라 보여도 안 한 것이고, 그 결점을 가려 주느라 침묵한 것임을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숙한 사람들 입니다.
남에게 비판 받지 않는 길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예수님은 서두에 결론부터 말씀하셨습니다. 남에게 비판받지 않는 길은 먼저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비판하면 바로 그 기준으로 비판을 받게 될 것이고 내가 사람을 헤아리면 그 헤아림의 잣대로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매일 사랑의 씨앗을 심으라
우리가 세상의 것에 목마르는 동안 세상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내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은 분별을 뛰어넘는 분별입니다. 비판은 사랑이 없는 판단입니다.
더구나 비판은 인간의 한계와 죄성에서 자라난 독초와 같습니다. 그 독은 먼저 나를 중독시킵니다.
비판을 계속하면 내가 시들고 관계가 시들고 결국 파탄이 납니다.
11. 좁은 길
남을 먼저 대접하는 길(마7:7-14)
구해야 할 것은 성령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린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마7:7-8)
우리는 세상의 필요를 따라 구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고 싶은 분이 주시겠다는 것을 구하고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마음으로 전심으로 구하는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곧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다 받은 것입니다. 성령 받은 줄 어떻게 아십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열매를 보고 압니다.
다른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열매가 없습니다. 나 한테 이런 열매가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요.
저자는 이런 열매가 없다면 그는 가짜이고, 신앙의 길을 잘못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내가 필요하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린 것이니"(마:7-8)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인내를 내포합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전 과정은 인내의 과정입니다.믿음은 인내하는 일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못 참고 못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으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먼저 대접하는 것이 교회되는 것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나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구하고 찾고 두드린 결과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삶이 되고 비로소 믿음이 무엇인지 아는 삶이 되고 비로소 소망이 무엇인지 아는 삶이 됩니다.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다가 가장 좋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합니다. 대접받고 싶은 상대방에게 먼저 대접하고 정중하게 대하고 부드럽게 말하면 세상의 죄악이 번성허는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먼저 대접해 주는 삶, 이것이 성련 충만한 삶이고 교회된 삶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특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우리가 살면서 좁은 길은 무엇입니까?
내 돈 손해보는 것, 내 시간 손해 보는 것, 내 취미 생활 못하는 것, 상대방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것, 나도 힘들고 어렵지만 힘든 사람 얘기 들어 주는 것 입니다. 좁은 길의 특징은 나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입니다. 비록 나는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할지라도 남은 제대로 먼저 대접하는 이 길이여말로 다름 아닌 좁은 길입니다.
이 길을 가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고,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길이고,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12. 반 석
좋은 성품의 집(마7:15-29)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은 처음을 복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 신앙의 도착지점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의 자리를 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집 비유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한 말씀은 신앙 이야깁니다. 바른 신앙이란 결국 좋은 성품의 집을 짓는 일임을 드려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으로 외부의 어떤 충격이 가해져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란 어떤 집입니까?
우리 인격의 집입니다. 우리 성품의 집이니다..
주님을 만난 뒤 성품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집을 짓고 있는게 아니라 그냥 소꿉장난하는 것입니다.
좋은 성품의 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성품의 열매롤 알 수 있다. 복음도 비슷한 것들이 뒤섞인 복음, 변질된 복음이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횡행합니다.
이런 복음은 그 안에 예수님의 생명력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열매가 많아도 가짜입니다.
고난이 닥칠 때 판가름 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
주님의 말씀을 두 사람이 같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듣을 것이 전부이고, 한 사람은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하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두 사람의 삶은 언제 그 차이가 드러납니까?
고난과 역경이 닥치면 그때 판가름이 납니다.
이제 산상수훈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8-29)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 말씀이 묵상되면 권위는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내 안에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천국이 임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청할 때를 알고 이미 예복을 입고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믿음 생활하시는 성도님들도 말씀을 듣고 좋은 성품으로 변화되어 성숙한 신앙생활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긴 도서소개의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4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 김근택 | 2025-01-01 | 24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3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1 | 김근택 | 2024-01-08 | 101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2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 김근택 | 2023-02-24 | 145 | |
공지 | 베뢰아 사람들의 모임(신앙도서 독서모임) 2기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 박민하 | 2023-02-24 | 117 | |
공지 | 베사모 모임 안내 | 김근택 | 2022-06-08 | 157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초청의 글 | 김근택 | 2022-03-05 | 143 | |
공지 | 베.사.모 활동을 위한 < 신앙도서 목록 >을 공유합니다.(업데이트 : 2024.02.02) | 박민하 | 2022-02-25 | 153 | |
공지 | 베뢰아 사람들의 모임(신앙도서 독서모임)을 소개합니다. | 박민하 | 2022-02-25 | 168 | |
75 | 도서소개: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 김근택 | 2025-02-05 | 4 | |
74 | 열혈 독서 | 김근택 | 2025-01-25 | 12 | |
73 | 도서소개: 겸손 1 | 김근택 | 2024-12-07 | 26 | |
72 | 도서소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1 | 김근택 | 2024-11-20 | 25 | |
71 | 도서소개: 이것이 예배이다. | 김근택 | 2024-11-08 | 28 | |
70 | 도서소개: 행복한 양치기 | 김근택 | 2024-10-03 | 34 | |
69 | 중보기도 파티를 읽고 4 | 김윤의 | 2024-08-27 | 75 | |
68 | 도서소개: 기도는 거룩한 고민입니다 | 김근택 | 2024-08-25 | 55 | |
67 | 도서소개: 하나님을 기뻐하라 1 | 김근택 | 2024-07-24 | 66 | |
66 | 도서소개: 무엇이 성숙인가? | 김근택 | 2024-07-04 | 61 | |
65 | 도서소개: 치열한 도전 2 | 김근택 | 2024-06-08 | 58 | |
64 | 도서 소개 -조니 에릭슨 타다의 희망노트 2 | 박계옥 | 2024-06-02 | 62 | |
63 | 도서소개: 언어의 영성 | 김근택 | 2024-05-14 | 60 | |
62 | '우리가 꿈꾸는 교회' 를 읽고... 2 | 김정회 | 2024-05-01 | 65 | |
61 | 도서소개:평양 대부흥 이야기 | 김근택 | 2024-04-24 | 51 |
댓글